한국 사회에서 ‘20대 남성의 극우화’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대선과 총선을 거치며 젊은 남성들이 보수적인 선택을 했다는 이유로, 이들을 ‘혐오 세대’, ‘정치적 위험군’처럼 묘사하는 시선도 많아졌다. 그러나 과연 이런 판단은 데이터에 기반한 것일까? 아니면 일종의 감정적 낙인일 뿐일까?
최근 〈시사IN〉과 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실시한 유권자 인식 조사와, 미시간주립대학교 국승민 교수의 분석은 이 문제에 보다 정밀한 답을 제시한다. 핵심은 단순하다. 20대 남성은 분명히 보수화되고 있지만, 극우화되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장 보수적인 세대, 그러나 극우는 아니다
20대 남성의 이념 성향은 정책 선호 분석과 자기 인식을 기준으로 모두 ‘보수’ 쪽에 가깝다. 감세, 규제완화, 대북 강경책 등의 이슈에 대해 다른 세대보다 보수적 응답이 높았고, 자신을 보수라고 인식하는 비율도 22%포인트 우위였다. 이는 전체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수준 중 하나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나는 극우파다’라는 진술에 동의한 20대 남성은 8%에 불과했다. 전체 평균(9%)보다 낮고, 70대 이상(14%)보다도 훨씬 낮다. ‘반민주적 행태’에 대한 지지 정도 역시 20대 남성은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을 보였다. 오히려 70대 이상에서 반민주주의적 태도가 훨씬 강하게 나타났다. 즉, 20대 남성은 정치적으로 보수화되었으나, 자유민주주의에 반대하거나 급진적이고 비타협적인 태도를 취하는 ‘극우’의 기준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기능적 이념으로 본 진짜 성향
정치학자들은 유권자의 진짜 성향을 파악할 때 ‘기능적 이념’을 중요하게 본다. 감세, 여성할당제, 탈원전, 차별금지법 등의 정책에 대한 선호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이다. 이를 기준으로 할 때도 20대 남성은 전 세대 중 가장 보수적인 그룹으로 나타났다.
반면, 20대 여성은 전 세대 중 가장 진보적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성별 간 이념 격차가 세대 간 이념 격차보다 더 크다는 점이다. 20대 남성과 여성의 이념 점수 중위값 차이는 2.4로, 이는 70대 내 보수와 진보의 격차(2.1)보다도 크다. 같은 세대 내에서 남성과 여성이 완전히 다른 정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 누구도 공감하지 않는 세대
문제는 20대 남성의 보수화가 단지 ‘정치 성향’의 변화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소외의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어릴 적부터 경쟁이 일상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정시냐 수시냐를 놓고 진로를 압박받고, 대학에 가서도 불확실한 미래를 감당해야 한다. 취업 시장은 좁고, 부모 세대와의 자산 격차는 너무 커서 따라잡을 수 없으며, 그 와중에 자신들은 아무런 특혜도 받지 못한 채 무한경쟁의 정글에 내던져졌다고 느낀다. 그런데도 이들의 감정은 정치권과 언론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진보는 그들을 ‘여성 혐오자’로 배제하고, 보수는 일시적으로 이용만 할 뿐 장기적 정책 설계에서는 배제한다.
가장 경쟁이 치열한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지만, 누구도 이들의 삶을 공감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화를 낸다고 해서, 그들이 방어적으로 반응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혐오나 극단으로 연결된다고 단정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태도다.
먼저 질문을 바꿔야 한다
지금 20대 남성은 단지 “왜 이렇게 보수적이냐”는 질문을 받을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 고립되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아야 한다. 이들은 말 그대로 정치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방치된 세대다. 누군가에게 공감받고, 자신의 감정이 정당하게 다뤄지길 원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제는 4050세대, 특히 민주당을 지지해 온 시민들이 먼저 이 질문을 바꿔야 할 때다. 우리는 지금껏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을 이야기해왔다. 그런데 언제부터 우리는 그 약자가 ‘정치적으로 바른 말’을 해야만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가?
우리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민감해졌지만, 그 민감함이 때로는 특정한 프레임을 고정시키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20대 남성은 어떤 혜택을 누려온 기득권이 아니라, 점점 더 격차를 따라잡기 힘든 현실에 놓인 또 다른 약자일 수 있다.
20대 남성은 왜 고립되어 있는가
지금 20대 남성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왜 이렇게 보수적이냐”가 아니다.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왜 이렇게 고립되었는가”다. 이들은 이념적 변화의 객체로만 다뤄져 왔지만, 실상은 정치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장기적으로 방치된 세대에 가깝다. 공감받고 싶다는 욕망은 결코 특권이 아니다. 생존 조건이 점점 악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자신의 감정이 정치적으로도 진지하게 다뤄지기를 바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요구다.
이제는 4050세대, 그 중에서도 오랫동안 진보 정치에 애정을 가져온 시민들이 이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이라는 원칙을 내세워온 이들이라면, 그 공감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을 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져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 순간, 이미 그 원칙은 훼손되었음을 자각해야 한다.
20대 남성은 기득권도 아니고, 루저도 아니다. 열심히 살아도 따라잡을 수 없는 자산 격차, 실패하면 곧장 낙오자로 간주되는 구조, 끊임없는 자기 검열 속에서의 경쟁을 가장 먼저 겪은 세대다. 하지만 그 현실은 ‘남성’이라는 이유로 쉽게 무시된다. 오히려 ‘이 정도는 견뎌야지’라는 식의 태도가 전제되어 있다. 진짜 공감은 조건을 묻지 않는다. 진보 정치가 지켜야 할 핵심 원칙은 배제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정치의 안쪽으로 데려오는 일이다. 그 목소리가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혹은 불편하게 들린다고 해서 정치 바깥으로 밀어낼 수는 없다. 이제는 이들의 말을 듣는 것이 먼저다.
설득은 공감의 다음 단계이지, 공감 없는 설득은 불신만을 키운다. 4050세대야말로 이 공감의 회복을 시작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지금까지 민주주의를 지켜온 세대가, 이제는 그 민주주의의 다음 세대를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 손이 향하는 대상이 누구든, 어떤 말투를 쓰든, 어떤 불만을 표현하든 간에, 그들을 처음부터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 것, 그것이 성숙한 정치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지금, 그 출발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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