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파면 이후 처음 실시된 차기 대선 주자 여론조사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서울경제와 한국갤럽이 공동으로 진행한 이 조사는 국민의힘 내부 역학은 물론, 보수 진영 전반의 균열과 긴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민심은 유승민을 선택했고, 당심은 김문수를 택했다. 이 극단적인 괴리는 단순한 여론의 편차를 넘어서, 국민의힘이 점점 더 고이고 있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전체 국민은 ‘유승민 1위’…중도·진보층 흡수
2025년 4월 4일부터 5일까지 진행된 이번 조사에서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전체 응답자의 19%로 보수 주자 중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김문수 장관은 15%, 홍준표 대구시장이 13%, 한동훈 전 대표는 11%로 뒤를 이었다.
유승민은 특히 40대(26%), 50대(23%), 60대(21%)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었다. 지역별로도 광주·전남(23%), 서울(22%), 인천·경기(19%) 등 수도권과 중도 성향 지역에서 강세를 보였다. 이는 유승민이 단순한 보수 인물이 아니라, 중도층과 일부 진보 유권자에게까지 확장성을 가진 후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입증한 결과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31%), 조국혁신당(50%), 개혁신당(58%) 지지층에서 유승민은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당 지지층은 ‘김문수 독주’…유승민 지지율 4% ‘꼴찌’
그러나 똑같은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총 480명)을 대상으로 한 별도 분석에서는 상황이 정반대였다. 김문수 장관은 23%의 지지를 얻으며 1위를 차지했고, 홍준표(16%), 오세훈(14%), 한동훈(14%)이 뒤를 이었다. 유승민의 지지율은 고작 4%로, 사실상 꼴찌였다. 보수 핵심 지지층이 여전히 유승민을 '탄핵 찬성파', '배신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김문수는 '탄핵 반대파'로서 강성 보수층의 확실한 지지를 받고 있다. 지역별로도 김문수는 대구·경북, 강원에서 25%, 부산·울산·경남에서 23%의 지지를 받아 보수 텃밭에서 독주 중이다. 오세훈 시장은 서울에서조차 10%에 그쳐 존재감을 잃었다.
민심 vs 당심, 경선 룰 갈등 불가피
국민의힘의 현재 경선 룰은 ‘민심 50%, 당심 50%’ 구조다. 이 조화는 본래 당의 정통성과 대중성을 함께 반영하기 위한 절충안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민심과 당심이 극명하게 충돌하는 구도에서는 경선 룰 자체가 갈등의 중심이 된다. 유승민, 오세훈 등 중도 확장형 후보들은 민심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김문수, 홍준표 등 강성 당심에 기반한 후보들은 ‘역선택’ 우려를 내세워 반대할 것이다. 이는 단순한 룰 논쟁을 넘어, 국민의힘이 어디로 향할지를 가르는 이념과 전략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유승민은 본선 경쟁력 있지만, 당내 기반은 무너졌다
여론조사만 놓고 보면 유승민은 중도층, 수도권, 젊은층을 아우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보수 주자다. 특히 30~60대 경제활동 인구의 지지를 받으며, 서울·수도권과 같은 외연 확장 지역에서도 강세를 보인다. 이번 서울경제·한국갤럽 조사에서는 광주·전남, 서울, 인천·경기 등에서도 1위를 기록했으며, 이는 단순한 지명도나 일시적 반사이익이 아니라 유권자층 전반에 걸쳐 형성된 ‘확장성’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유승민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기획재정위원장과 원내대표를 역임하며 ‘말 잘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내용이 있는 정치인’이라는 평을 받아왔다. 이러한 정책 기반의 정치 역량은 보수 진영 내부에서는 드물게 중도와 진보 유권자에게까지 신뢰를 형성하는 강점이 된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약점은 당내 기반의 붕괴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유승민의 지지율은 3~4%에 불과하다. 이는 과거 ‘배신자 프레임’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이탈했던 경력, 윤석열 대통령과의 각을 세웠던 발언 등이 당원들의 신뢰를 완전히 잃게 만들었다. 유승민은 지난 10여 년간 국민의힘의 주류 권력과 한 번도 제대로 손을 맞잡은 적이 없었고, 이를 통해 스스로 ‘소수파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그러나 그 결과로 현재 국민의힘 당내에서 유승민을 공개 지지하거나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계파는 거의 없다.
결과적으로 유승민은 ‘민심의 후보’일 수는 있어도 ‘국민의힘 후보’가 되기에는 구조적 제약이 너무 크다. 본선 경쟁력은 있으나, 경선 자체가 문턱이 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이는 단지 유승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민심과 괴리된 채 당심에만 갇혀 있는 구조를 반영하는 상징적 장면이기도 하다.
보수 정당의 자가당착, ‘고인 물’의 징후
이번 조사에서 보수층에서도 윤석열 파면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응답이 66%에 달했다. 이는 강경 보수층의 결집에도 불구하고, 일반 보수 유권자들은 어느 정도 법치와 균형 감각을 지키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심은 여전히 강경 일변도다. 김문수, 홍준표, 한동훈이라는 구도는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이고, 개방보다는 폐쇄에 가깝다. 정당은 고이는 순간부터 죽기 시작한다. 국민의힘은 지금 그 전조를 보이고 있다. 당원 구조는 왜곡되었고, 중도층 유입은 차단되고 있으며, 외부 비판은 역선택으로 치부되고 있다. 보수 진영 내부에서도 "경쟁력 있는 후보가 나와도 당에서 이길 수 없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민심과 연결 끊긴 정당의 말로는 자명하다
지금의 국민의힘은 이념적으로도 정통 보수를 넘어 극우로 가고 있지만, 전략적으로는 매우 고립되어 있다. 중도층과의 교집합을 포기한 정당은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보수 유권자들도 점차 '현실 정치력'을 따지기 시작했다. 민심과 당심의 괴리를 방치한 채 경선을 치르고, 그 결과 후보가 본선에서 외면받는 시나리오는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길이다. 이 길을 다시 가느냐, 아니면 이번엔 다르게 가보느냐는 지금 이 순간 국민의힘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고인 물을 뒤흔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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